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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학전공

동문 인터뷰

[인터뷰] 한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신라의 유산’을 사랑한 ‘고고학자’ 박성남의 이야기
등록일
2021-02-22
작성자
국사학전공
조회수
156


Q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 안녕하세요. 학우 여러분. 저는 역사철학부로 입학해서 국사학을 주 전공으로 고고미술사학을 복수전공한 박성남이라고 합니다.

 

Q : 역사철학부라는 명칭이 저에게는 무척 낯설어 보입니다.

A : 제가 입학할 당시에는 고고미술사학과와 국사학과 철학과가 역사철학부 하나로 묶여 있었습니다. :) 지금은 입학할 때부터 국사학전공으로 들어가지요?

- 네 맞습니다. 제가 입학할 때 당시에는 국사학과 단일 과로 입학했습니다.

 

Q : 다음으로 궁금한 것이, 선배님께서는 고고학을 전공으로 공부하셨는데, 그 구체적인 분야와 공부하게 되신 계기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A : 우선은, 학부생일 때 발굴에 참여했던 경험이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예전 학교 박물관에서 시행한 학생복지관 부지 발굴현장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리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근무할 때 왕경현장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토기자료들을 보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계기가 되어서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서울에 있는 고려문화재연구원에서 일할 때, 한강 유역의 신라 유적을 조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서울·경기지역의 인화문 자료들을 정리하여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일본으로 유학 간 것은 16년도입니다. 교토에 소재한 리츠메이칸대학의 문학연구과 행동정보학전공으로 입학하여, 고고학문화유산을 전수했습니다. (*專修한 가지 분야의 기술이나 지식을 전문적으로 닦다.’ 라는 뜻입니다. - 박성남 선생님)

한국에서는 한강유역권의 통일신라 토기에 대해 정리하고 분석했습니다만, 일본으로 유학한 것을 계기로 권역을 넓혀서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폭넓게 분포하는 통일신라 토기 양식에 관해 연구했습니다.

 

Q : 지금은 학생들이 발굴 기관과 연계한 학과 내 실습 프로그램으로 발굴 현장을 체험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수학하실 당시에는 발굴 사업을 학교에서 진행하고 있었나 보네요?

 

A : 당시에는 교내 박물관 차원에서 발굴조사를 추진했었습니다. 고고미술사학과의 야외고고학수업도 교내 발굴 현장에서 진행되었던 기억이 있네요.

 

Q : 말씀드렸던 대로, 최근 학과와 발굴 기관 간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현장실습이 가능해지면서, 고고학 분야로의 진출을 생각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사학과학부 과정에서는 고고학에 관련한 수업을 들을 수 없는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고고학을 미래 진로로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으시다면?

 

A : 일단, 학부 때의 전공과 대학원에서의 전공이 다른 케이스들도 많습니다. 학부 때 고고학 수업을 듣지 못했을 때는 용어 자체가 생소하고 적응하기가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수업을 들을 때에도, 교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관심에 따라 진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학 전후로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혹시 요즘에도 다른 과 수업을 들을 수 있나요?

- , 자율 선택 과목으로 수강 신청이 가능합니다. 저도 야외고고학, 박물관학을 수강했었습니다.

 

A : 알아서 듣고 싶은 수업을 선택해서, 즉 고고미술사학과 전공수업이나 교양 수업을 선택해서 들으면 조금씩 고고학에 대한 기반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원을 가기 위해서 기초적인 개론 수업을 듣거나,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등의 노력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준비가 조금 덜 되었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실제로 문헌사학을 전공하다가 진학해서 고고학을 전공한 사례도 다수 있었습니다. 대학원에서 기초지식이 모자란다고 판단되면, 해당 교수의 허락을 맡고 학부 수업을 청강하던지 방법적인 측면에서는 여러 가지 있습니다. 늦게 시작한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유학 시에 본인도 일본어가 능통한 수준까지는 아니어서, 학부 12학년 수업을 청강한 바 있습니다.

 

Q : 제가 생각하기에 고고학과 문헌사학은 결이 조금은 다른 학문이라 볼 수도 있지만, 사학계에서도 문헌과 고고자료를 연계하여 연구가 이뤄지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고고학과 문헌사학을 겸비한다는 것이 진학 및 연구에 있어서 큰 메리트로 작용할 수 있을까요?

 

A : 문헌사학은 역사적 기록을 보고 연구하며, 고고학은 유적의 유구유물과 같은(*유적은 유구와 유물을 합한 상위의 개념입니다. - 필자) 물질자료를 보고 과거를 복원하며, 역사적 추론이 이루어집니다.

선사고고학의 경우에는 先史, 즉 역사적 기록보다 이전이기 때문에,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radiocarbon dating)이나 민족지학(Ethnographie) 등 연구 방법이 여러 가지입니다.

반면 역사고고학이라 하면 기록이 존재하기 때문에 물질자료와 문헌자료 간의 비교검토가 가능한 점이 있습니다. 삼국사기 등의 사료들을 보면, 인간의 활동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무슨 죄를 지어 임금이 노했다.’ ‘어디에 사원을 건립했다.’ 등의 굵직한 사실들을 전합니다. 하지만 누가 어떤 그릇을 사용해서 무엇을 먹었다.’ 에 대한 기록 같은 것은 거의 없습니다. 문헌사학과 고고학은 서로의 결점을 보완할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상호간의 기록연구결과의 대조를 통해 역사적 정황을 파악하고, 발굴 조사에 활용하는 등 상호보완적인 관계라 볼 수 있겠습니다.

 

Q :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실 당시, 구체적인 연구 분야에 대한 설정이 있으셨습니까? , 입학할 때 당시 설정했던 연구 분야가 석,박 논문을 써 낼 때까지 일관되게 유지되는 것이 보통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A: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일했던 현장이 통일신라 토기가 많이 나오는 현장이었고, 보고서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런 토기들이 어떻게 나오는 것인지, 이후로도 어떻게 분화했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석사과정을 밟게 되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이 생각이 일관적으로 발전하여 석사박사과정까지 범위를 넓히는 식(경주-한반도-한반도일본 열도)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반면에 생각이 조금은 달라지는 사람도 있는데, 큰 범주(전공 분야)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시대를 바꾸거나, 토기를 연구하다가 기와에 흥미를 붙이는 등의 변화들은 있는 것 같습니다.

 

Q : 우리의 고고학이 침탈기 이후 일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부분이 크기에, 일본으로의 유학은 큰 도움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고고학 연구에 있어서 일본어는 필수라고 들었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일본 유학의 장점이 될 만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가장 힘드셨던 점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A : 제가 JLPT 2급을 가지고 갈 만큼 언어적인 부분이 조금 부족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의 고고학이 일본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맞습니다. 광복 이후에 우리 스스로 발굴을 진행했을 때에도 일본인 학자를 초청해서 자문을 받아 조사했던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영남 지역은 일본과 교류가 잦고 영향을 받은 면이 큽니다. 하지만,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역은 영미권의 자료들을 기반으로 연구가 이루어져서 그쪽으로 유학을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서울에 계신 교수님들은 영국 쪽으로 많이들 가시더군요. 근래 들어서는 중국러시아와 교류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내가 어떤 것을 공부하고 싶은지, 그 점을 고려하여 유학할 곳을 선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물론 일본어는 우리에게 친숙한 한자 문화권의 언어이기에, 배우기 수월하고 한자 실력도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습니다만,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스스로 수학하고자 하는 주제에 도움이 되는 언어를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Q :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입학하자마자 논문 주제를 선정하고 연구를 시작해야 제때 졸업하기 쉽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A : 막 학부를 졸업한 시점에서 논문을 써내기 시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대학원수업을 들으면서, 자기가 염두에 둔 주제를 좀 더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컴퓨터-주변기기-마우스-마우스 휠 처럼요.) 범주를 계속 좁혀서 세부적인 연구 주제가 가시화되면, 그때 논문을 쓰게 될 것입니다.

 

Q : 선생님께서는 신라 토기를 전공하셨는데, 고려문화재연구원은 서울경기지역에 위치했기 때문에 다양한 시대의 유적들을 마주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인의 연구 분야와 차이가 있을 때에는 (유적을) 조사하는데 있어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발굴 현장에서 일하면서 든 생각인데, 저였으면 굉장히 고민스러웠을 듯합니다. 추후에 발굴 기관으로 취업하려고 할 때에 이러한 점 때문에, ‘신라 전공은 경주’, ‘백제(사비기) 전공은 부여등 지역을 한정해야 할까요?

 

A : 경주는 당연하게도 신라 관계된 유적들이 많으나, 서울경기 쪽으로 올라오면서 다양한 시대의 유적을 조사했었습니다. 제 전공이 신라이지만, 청동기초기철기시대 주거지, 백제고구려 석실분, 조선시대 건물지까지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공과는 다른 시대의 유적에서 작업하고 보고서를 집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 일화로, 수원의 광교 유적이라는 곳이 있는데 신라 한강 진출기 전후 시기의 고분군입니다. 기관에서 여기를 조사할 당시에 저는 다른 팀이었습니다만, 불려가서 조사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유적이 어떤 시대(성격)이냐에 따라, 전공한 분야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경주에서 신라 왕경유적과 분황사를 조사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조선시대 건물지를 조사하게 되었을 때도 방법적인 측면에서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어떤 시대의 유적을 조사하건 간에 토층과 유구선을 잡아서 조사하는 방법은 공통적이고, 가령 같은 성격의 유적, 예를 들면 동일한 성격의 건물지 유적을 조사할 때에도 유적의 성격을 바탕으로 동일한 기법을 적용하기 때문에 크게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또한, 파악이 어렵더라도, 주변 유적의 보고서를 참고하거나, 자문 회의를 통해 조언을 받을 수 있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보고서를 집필하는 것 자체도(발굴 완료 후 2년 이내에 보고서를 간행해야 한다. - 필자) 생소한 분야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며, 글을 쓰는 연습 또한 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도움이 많이 된다 생각합니다.

 

Q : 감사합니다. 현장에서 들었던 쓸데없는 궁금증이 해결된 것 같아 기쁩니다.

 

A : 쓸데없는 질문이 아니에요. 저는 현장에 나오는 학생들이 질문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질문을 권장하는 것은, 학생들이 좀 더 많이 알아 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질문을 받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해요?’,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오나요?’ 하는 질문은, 오히려 질문 받은 본인에게 생각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은 본인이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며, 모르고 있던 것에 대해서는 본인의 부족함을 성찰하고 노력하게 해 줄 것입니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물어보십시오!

 

Q : 박사 논문을 쓰실 때까지, 정말 큰 노력을 기울이셨을 텐데, 그만큼 그 분야에 대한 애정이 없었더라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본인의 전공 분야에 대한 매력을 꼽자면 무엇일까요?

 

A : 통일신라 토기라고 하면 대표적인 것은 인화문토기입니다. 인화문토기를 보고 있으면 저런 문양들은 왜 찍었을까, 구체적으로 구름무늬(, 꽃 등)를 새긴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사실 문양의 의미 하나하나를 밝히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왜 토기에 갑자기 장식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불러일으킵니다. 6세기 후반에 등장하여 7세기로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도장 무늬(인화문)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직접 문양을 새기는 것보다 편하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어디에서 와서 갑자기 발현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인화문은 8세기와 9세기를 거치면서 사라지는데 또 왜 사라지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조선시대에도 분청사기로 대표되는 인화문이 시문된 자기가 있긴 합니다. -박성남 선생님)

이러한 궁금증들에서 비롯하여 토기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밥그릇, 국그릇, 국물 있는 반찬 등 식기는 그 용도에 따라 모양이 다릅니다. 이와 관련해서 당시의 식생활, 즉 어떤 음식을 먹어서 어떤 용도에서 그릇의 모양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토기의) 탁본을 치고 자료를 수집하여 조사할 때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토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궁금증들이 저를 몰두하게 했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별첨> 인화문 탁본

 

 <골호 뚜껑 상단부 인화문 - 경북대학교 박물관 소장>                  <골호 뚜껑 상단부 인화문 - 나라현 텐리시 텐리참고관 소장>


Q : 분야를 막론하고 앞으로 선생님처럼 공부를 계속 할 학부졸업예정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실 수 있나요?

 

A : 저는 인생의 모토가 즐겁고 행복하자.’입니다.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분야에 있건 간에 상관 없이 즐겁게 공부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즐겁고 행복한 것이지요. 공부를 할 때 체력이 힘들어서’, ‘경제적으로 힘들어서등의 이유로 걱정들을 많이 합니다. 저도 물론 걱정들이 있었지만, 걱정이 든다고 해서 제가 불행했던 적은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해답을 찾는 것은 내 스스로가 발전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능력이 뛰어난 것은 둘째 치고, 자료를 보고 해석분석하는데 있어서 내 능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스스로 자료를 찾을 수도 있거니와, 교수님선후배동기 등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이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갔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힘들겠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저는 매우 즐거웠습니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며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면, 즐겁고 행복하지 않거니와, 목표의식이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마찬가지입니다. 힘든 것과 별개로 재미있어야 합니다.

또 질문할 때에는 구체적으로 하십시오. 두루뭉술하게 질문을 하면, 질문자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모르거나 곡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토기를 보다 보니 이 부분에 문양이 찍혀 있는데, 왜 꼭 이 부분에 찍어 냈어야 했는지등 구체적으로 접근하십시오. 그래야 질문을 받는 사람이 질문의 요지를 쉽게 파악하고, 성심껏 답변을 해 줄 수 있습니다. 혹여 교수님이나 동기들의 전공분야가 조금은 다르더라도, ‘내 관점에서는 이렇게 보는데, 이렇게 접근해보면 어떨까?’ 하는 다른 관점에서의 답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항상 내가 무엇이 궁금한지 잘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십시오.

 

Q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이번 학기부터 강의를 맡기로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A : 일본에서 일반인들 대상으로 특강을 한 적이 있긴 한데, 한 학기 분량의 강의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공적으로는 지식의 전달자와 학습자 간의 만남이며, 사적으로는 선후배 간의 만남입니다.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이자 후배들에게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책임감도 듭니다. 긴장도 되고 상당히 복잡한 심경입니다. 아마도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하니, 소통에 있어서도 어떤 방식이 좋을지 고민 중 입니다. 카톡이나 메일을 잘 활용해서 학생들과 소통하고 피드백하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Q : 강의는 어떤 식으로 진행할 예정이십니까? 강의의 간략한 주제와, 본인이 생각하기에 학생들이 들었을 때 흥미롭게 느낄 것 같다하는 점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A : 고고 자료들을 어떤 식으로 역사 자료와 접목시켜서 활용할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염두에 둔 것은, ‘고대의 BTS는 누구였을까’, ‘한류의 시작은 언제부터였는가등이 있겠습니다. 이야기하자면 국제 교류사에 초점을 맞춘 주제입니다.

왜 일본에서 신라 토기가 출토되었는지 등의 물질자료와, 신라 사람은 왜 일본에 갔으며, 기사에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등의 역사자료를 비교해 볼 수 있겠습니다. 불교라는 문화 또한 외국에서 전래된 문화인데, 외래문화들이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주었고 무엇으로 나타나는지도 살펴볼 것입니다. , 역사 드라마 속에서 나타난 의복, 그릇, , 갑옷 등이 어떻게 고증되었는지도 알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생활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이를 해석하는 것도 주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Q : 선생님께서는 학부생 때 수업을 열심히 듣는 편이셨습니까? 가장 흥미롭게 들으셨던 수업은 무엇입니까?

 

A : 굉장히 열심히 들었습니다. 수업 때마다 맨 앞자리가 제 지정석일 정도로요. 그런데 놀기도 정말 많이 놀았습니다. 교수님과 막걸리도 많이 마셨지요.

어릴 때부터 역사가 재미있어서 관련 도서(위인전, 역사 소설), 드라마 등을 많이 접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대학에 들어와서 국영수를 배제하고 역사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니, 저로써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대학에서는 근현대사, 그 중에서도 일제강점기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암울한 시대적 배경에 대해 공부하다보니까 감정적으로 격해지더군요. 그러다가 신라 유적이 있는 현장을 가게 된 것을 계기로 고대사를 공부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근현대사와, 일본 내 재일교포의 역사에 관해 관심이 있고 꾸준히 독서중입니다.

Q : 마지막으로 조금 있으면 볼 학생들에게 한 마디 해주시겠습니까?

 

A : 대면수업을 통해 만날 수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 아마 이번 학기까지는 비대면일 것 같습니다. 랜선으로 이루어지는 만남이기 때문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이번 학기 수업을 통해 조금 더 재미있게 역사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수업을 들으시거나 안 들으시거나 상관없이 후배 분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한 해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 편집-국사학과 14학번 한경훈, 국사학과 17학번 박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