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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인터뷰

[인터뷰] 진심으로 전하는 마을의 역사. 마을문화기록연구원 김태연의 이야기
등록일
2021-02-23
작성자
국사학전공
조회수
122

 


1, 자기소개

 

Q.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A. 저는 화성시 봉담읍에 위치한 마을문화기록연구원의 아키비스트, 김태연 주임입니다.

 

Q. 마을문화기록연구원으로 취업을 한 거네요?

A. 네 작년 4, 28살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Q. 마을기록문화연구원의 어떤 점이 매력으로 다가와서 입사를 희망하게 되었나요?

A. 제가 국사학과에서 학과공부를 하는 동안 매번 느꼈던 회의감이 있어요. [왜 이렇게 역사를 멀리서 보고 있을까. 국가, , 정치에 국한된 거시적인 역사뿐일까. 보다 가까이서 보는 역사, 민중의 이야기를 내가 공부할 수 없을까. 그리고 기록 속에 담긴 이야기의 기표나 상징 등 해석될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사실관계에만 얽매이는 것이 아닐까?] 이런 저런 고민에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다가 졸업을 하게 되었지요. 여러 직장을 옮겨 다녔어요. 발굴하는 곳도 가봤고, 글 쓰는 잡지회사도 가봤는데 당장 굶주림은 해결해도 결국 마음이 허한 거예요. 그렇게 전전하다가 이곳의 공고를 봤는데 마을 아카이브라는 일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카이브가 뭘까, 하면서 알아봤어요. 각 지역을 찾아가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수집한 지역사와 인생사를 글로 옮기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마침 사라지는 마을을 기록한다고 들었는데, 면접 얼마 전 제가 살던 동네를 가보니 집터도 없이 모든 흔적이 사라져,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몇 년 살다가 떠난 내게도 이렇게 큰 상실감인데, 수십 년을 고향으로 두고 살아온 사람들에겐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습니다. 이런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가 전해줄까? 싶었습니다. 힘 없는, 민중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일이야말로 내가 추구했던 역사가의 방향이 아닐까 하면서, 꼭 가야겠다고 다짐했고,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2. 직업소개

 

Q. 그러면 구체적으로 마을문화기록연구원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A. 마을문화기록연구원은 특정 지역을 찾아가서 지역민들을 인터뷰하고 이를 통해 지역의 민속문화, 가령 마을제사, 잔치, 대표 인물, 금기 등의 지역사를 수집합니다. 또한 그분들의 생애사를 함께 에세이 형태의 글로 옮겨 책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책자 제작 과정에서 시에서나 군 또는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정보들도 같이 수렴을 하고 그 외에 역사연구단체에서 만들어놓은 데이터들도 함께 수집 및 참고해 하나의 지역사 기록물로 만들어내는 일을 맡습니다. 사업은 보통 공공단체와 함께 이루어지는데요. 도시재생 사업이나 기록화사업 의향을 단체에서 밝히면, 참여 기업을 뽑는 입찰이 열리게 됩니다. 이에 저희가 이에 맞는 양식을 준비하고, 대상 지역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와 함께 제안서를 작성해 신청합니다. 단체 측에서 응하여 계약 체결이 되면 작업에 착수합니다.

 

(Q. 비즈니스 모델이 일반 개인에게서 얻는 이익이아니라 공공기관을 상대로 이익을 취하는 사업인거죠? A. 네 맞습니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합니다.)

 

Q. 그럼 주임님의 주요 업무는 무엇인가요?

A. 저의 경우에는 제안서 준비, 책자 전반의 기획안 수립, 자료 수집,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명 영상 제작, 현장 인터뷰, 사진촬영, 인터뷰 내용을 글로 작성하는 작업을 해요. 또 디자인팀과 함께 의논해서 어떤 책을 만들 것인가 하는 전체적인 의논도 하고 있어요. 기록사업에서 종종 전시를 준비할 때도 있는데, 전시 기획 역시 함께 맡고 있습니다. 기획에서 집필까지 전반적인, 마을기록책자를 만들 때 필요한 부분은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Q. 그러면 이러한 데이터를 가지고 책을 만드는 것(글로 남기는 것)이 우선 목적인건가요?

A. 네 맞습니다. 글로 남기고, 전자데이터로 남기기도 하고요. 저희가 이번에 새로운 데이터 저장방식을 찾아서 적용 중인데, 워드프레스라고 해서 홈페이지를 만드는 웹사이트가 있습니다. 저희가 모아놓은 자료를 전자데이터로 변환하여 인터넷 아카이브 형태로 만드는 시도 중입니다.

 

Q. 이렇게 책으로 남긴다고 하니 정말 흥미롭네요. 책이면 사진을 많이 찍으실텐데 영상으로의 수집은 어떻게 남기나요?

A. 영상은 전문 캠코더를 통해 촬영하고, 파일을 아카이브에 업로드하고 공공단체와 함께 공유도 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업의 경우 외부 촬영, 편집팀을 고용하거나 하는 식으로 전문적인 영상을 만들어 회사 유튜브에 업로드하기도 합니다.

 

Q. 공공기관과 연계를 해서 사업을 따서 한다고 하면 수익모델이 일정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데 매번 똑같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인지 궁금합니다.

A. 솔직히 저희가 바쁜 이유가 이 제안서를 작성하는 작업이 상당히 시간을 많이 소모합니다. 사업이 체결되어야 저희가 일을 할 수 있다 보니 회사 사람들 모두 제안서에 공을 많이 들입니다. 그래도 횟수가 많이 차다 보니 저희를 알아주시는 분들도 많아졌고 해서 요즘은 그렇게 어려운 상황은 아니구요. 오히려 가끔은 일거리가 너무 많아 다 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걱정입니다. 하하. 최근에도 저희가 인터뷰를 다닌 지역에서도 호응이 되게 좋은데, 해당 지역에서 연계적으로 하고 있는 기록사업 또한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Q. 마을문화기록연구원의 경쟁사가 많은가요?

A. 아카이브 업체가 많지는 않아요. 전국에. 그런데 많지는 않은데 생각보다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로 학교에서나 공공단체에서 기록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이 저희의 경쟁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분들은 공적 아카이브로, 저희는 민간 아카이브라고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다보니 공적인 부분에서는 사실 그 자체의 전달에 그칠 수 있으나, 저희는 민간 차원으로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중시합니다.

 

Q. 아카이브 사업의 향후 전망(은 어떻게 되나요)?

A. 아카이브 사업이라는 것이 저희는 초기단계라고 생각해요.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역사라는 것은 사실관계의 나열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까지는 답은 하나다. 답은 정해져있다. 두 개의 답이 양립할 수 없다.’ 라는 일원론적 관념, 선형적인 관념이 지배적이었으나 이는 점차 깨지고 있고, 점차 다양성에 대해서 탐구되는 사회가 도래했습니다. 또한 현재 인문학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각박해진 사회 속에서, 사람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답을 얻고자 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입니다. 오늘날 아카이브는 멀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잊고 지나친 작은 역사들의 편린을 재발견함으로서 인간성을 탐구할 수 있는 귀중한 기록사업으로 재평가 될 것입니다.

 

Q. 이게 어떻게 보면 어르신들의 기억에 의존한 데이터잖아요. 원래의 역사에서는 증거를 가지고 하나의 통념에 도달하려고 하는데 아카이브를 한다고 하면 어르신들의 기억이 상충되는 경우가 있을 텐데 그분의 기억 자체를 역사로 보는 건가요?

A. 그건 아니고요.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면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아요. 누구는 ‘79년에 일어난 일이야.’ 또 어떤 사람은 ‘80년에 일어난 일이야.’ 라고 하시는데 이런 경우에는 이 사건이 언제의 일인가 충분한 조사를 거쳐서 주석을 붙이거나 하는 식으로 사실검증을 거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것은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자 함이지, ‘사실 자체는 상관없어이런 것이 아니에요.

 

Q. 인터뷰 대상은 어떻게 정하나요?

A. 공공단체에서 일을 받아온 후 대상지는 어떤 지역인지 추가적으로 조사합니다. 이곳은 언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지역에서 관련된 역사적 이슈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의 사료조사는 물론, 현재는 몇 명이 살고 있으며 이곳의 커뮤니티 단체는 무엇인지 조사하고, 커뮤니티를 진행하고 있는 분들이 누구인지 지자체장, 노인회 회장, 경로당을 찾아가면서 거기서 커뮤니티를 진행하고 있는 분들을 먼저 찾아뵙습니다. 기록사업 전반에 대한 내용을 전달 드리고, 지역 거주 어르신들을 함께 찾아뵙고 인터뷰 요청을 드립니다. 이에 승낙 후 연락처를 공유 받아 저희가 다시 찾아뵙는 과정을 거칩니다.

 

Q. 이렇게 인터뷰를 하다보면 애로사항이 많을 것 같아요. 마음을 안 열어 주신다거나 그런 불편한 점 힘든 점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A. 저희가 지금 직면한 문제가 있는데, 이번에 아카이빙을 시작하는 곳인 화성시 황계동에서의 갈등이에요. 황계동이 수원전투비행장 바로 옆에 있어서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곳인데, 그래서 그런지 주민들의 신경이 날카롭고, 지역 내 갈등이 빚어져 외지인에 대해 마음을 꾹 닫고 있어요. 이처럼 어떤 지역사업과 함께 착수할 때 누군가에겐 이득이 되고 우리한테는 이득이 안 된다고 하시면서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어요.

이전에도 의왕시의 도룡마을이라고 그런 갈등이 좀 있었어요. 요 앞이 도룡마을이라는 곳인데 이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곧 없어져요. 아파트가 들어오니까 우리는 돈을 많이 받네, 난 괜찮아이런 분들도 있었고, ‘우리는 이 돈으로 어떻게 살아.’ ‘보상이고 뭐고, 고향을 어떻게 떠나느냐.’ 하며 싸우는 분들도 계셨어요. 저희가 찾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들 마음속의 벽이 점차 허물어져가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이 일을 제의했던 LH토지공사에서도 점차 주민들과의 벽을 허물어가면서 완만하게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 졌어요. 아직까지도 마을 통장님께서 종종 연락이 온답니다. 진심이 아니면 할 수 없었겠죠.

 

Q. 결국엔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 그런 과정이네요.

A. 그렇죠. 그것을 위해서 저희가 계속 찾아뵙고 진실하게 이야기를 나누려고 해요. 나는 이일을 해서 돈 벌어야지, 먹고 살아야지.’ 이런 식으로 이분들에게 다가가면 주민들도 그 얼굴을 읽으리라 생각해요. 항상 진심으로 다가가면 주민들이 그에 맞는 답변을 해주세요. 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사는 생각이 있어요. 사람은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제 영위를 위해 마주하는 것이 아닌, 마음을 나누기 위해 그 앞에 서있다고 여기면서 일에 임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철학자, 엠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고 했습니다. 저는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요. 매번 현장에 나갈 때마다 배우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Q. 이 일의 장단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장점이라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아카이브를 하면서 나도 화성사람인데 화성에 이런 마을이 있었구나,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송산 지역이라고 화성시 서부 쪽에 위치한 곳이 있는데, 저는 국사학과면서 부끄럽게도 이 지역에서 독립운동이 크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이번에 새로 알았거든요. 3.1운동 때 일본순사를 처단하고 천명의 군중이 가까이 시위에 나섰다는 사실을 이번에 조사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이런 것처럼 제가 국사학과면서 멀리서 보니까 놓쳤던 역사들도 확인할 수도 있고, 우리 지역인데도 몰랐던 것들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울릉도 아카이브를 맡게 되면서 울릉도 전역도 돌아보고, 또 운좋게 독도를 가보기도 했어요. 경험의 범위가 늘어나는 만큼, 뜻하지 않은 기회가 많다는 점이 이 일의 최대 장점인 것 같아요.

단점은 피로감이죠. 일이 상당히 많습니다. 여느 출판사처럼 마감을 엄수해야하기 때문에 야근도 자주 합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힘든 분들은 이 직업이 힘들 수 있겠어요. 뜻하지 않게 며칠 동안 집을 떠나는 일들도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힘드신 분들에게는 단점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전 출장 때면 항상 설레네요. 또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어요.

 

Q. 이 연구소의 복지가 있다면?

A. 복지라... 석식이 제공됩니다. 이사님이 함께 근무하다보면 점심도 사주시고. 운 좋으면 울릉도, 독도도 갈 수 있고요. 하하. 제가 만든 책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도 하나의 복지라고 봐도 되겠죠?

 

 

< 기록단 동료들_울릉도에서>


3. 취업과정

 

Q. 이후의 취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인문 100년 장학부터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인문학도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이후에도 인문학을 공부하고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다짐을 품고 살아왔어요. 그래서 계속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인문학 공부가 너무 좋아서 공부만 하다 보니 취업준비를 소홀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을 간과했던 것 같아요. 졸업하고 나니 자격증도 별로 없고 남는 것은 블로그 등에 적어놓은 철학적 영화 분석, 독후감, , 여행기 등의 글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졸업 후 한 발굴 연구소에서 일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이곳에서 전공인 역사를 통해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현장은 실상과 다르더라고요. 대학원 진학 강제, 차량 구매 요구 등 여러 가지 요구조건들과 합숙 등 폐쇄적인 환경이 제가 상상했던 환경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있는 이들의 태도, 발굴은 그저 돈벌이라는 것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나의 재능을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환경이 또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고민하다가 회사의 월간 잡지를 발간하는 사보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여기서도 고초를 겪었어요. 인문학적인 소재를 글에 녹여서 써내면 이런 글들은 어차피 이 회사사람들 멍청해서 이해 못해.”라는 이야기가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또 좌절을 했었죠.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전공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마케팅회사에 들어갔습니다. 4개월 정도 생각 없이 일하다 보니 벌이도 괜찮은데 인생이 허하더라고요. ‘무엇을 위해서 살까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한 일이 아니라 내 영혼을 바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또 퇴사를 했죠, 한두 달 준비하다가 우연히 이곳의 공고를 보고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업무에는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Q. 인문 100년 장학금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A. 학교 홈페이지 공지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인문학을 계속 연구하고 이를 통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선정하는 장학금이었어요. 저에게 딱 맞는 장학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블로그에 꾸준히 정리했던 글을 정리해서 심사위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책과 영화를 보고 함의를 분석해, 이를 현 사회에 대입시켜서 나름의 고찰과 해답을 수년간 글에 담았습니다. 저는 영화로 정리했지만 다른 누군가가 저처럼 시도한다면 연극이나 드라마나 사회현상 같은 것들을 블로그에 게재하거나 정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결국 그런 일련의 노력과 시선을 좋게 보신건지. 장학생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인문 100년 장학생으로서 인문학을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성과를 통해서 사회에 공언하겠다고 선서를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Q. 취업 과정에서 선배로서 꿀팁이 있으시다면?

A. 포트폴리오가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오랜 시간 동안 준비를 해 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저의 경우 수년간 관람한 영화표를 수집해 실물 수첩으로 보관해두었고, 블로그에 영화, 책 등을 분석한 글을 써왔죠. 이런 작업들이 단순해보일 수 있지만 이 일(아카이브)을 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것들이 귀중한 기록이 될 수 있습니다. 비단 기록 분야뿐만이 아니라, 어느 직종이건 마찬가지일거예요. 꾸준한 노력은 누군가가 당신을 바라볼 때 분명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니까요. 그 덕에 짧은 시간이지만 다양한 직장을 돌아보고, 여러 직장의 면접을 체험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하찮고 작은 것처럼 보여도, 후대엔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뭐라도 찾아보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Q. 취업 과정에서 학과나 학교의 도움을 받은 것이 있으신가요?

A. 처음 입사했었던 발굴연구소는 학교의 취업지원센터에서 취직공고가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어서 취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진로가 저와는 맞지 않아서 금방 나오기는 했지만요. 이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여러 회사를 전전할 때 학과 선후배들이 고민을 들어주고 힘을 많이 주었습니다.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교수님들과도 지속적으로 연락하면서 조언을 받았습니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으신가요?

A. 전국 팔도의 모든 마을을 아카이브 하고 싶습니다. 그 때까지 진심을 잃지 않고 지금과 같은 마인드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Q. 아카이빙이라는 것은 사람의 추억 같은 것들을 기록하는 일인가요?

A. 추억과 진심, 미처 담지 못한 역사를 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11, 공주로 여행을 갔을 때 한 식당에 들렀습니다. 가만히 앉아 여행을 회고하고 있을 적에, 옆 테이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래, 이야기 잘 했어. 네 진심을 다 털어놔야 트라우마를 없애지.”

 

우연히 들은 이야기를 통해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설움이나 아픔이나 슬픔을 씻어낼 수 있는 치유가 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말한 도룡마을 사람들 역시 그랬겠지요. 다시 한 번 제가 하는 일에 대한 다짐을 되새겼습니다. 앞으로도 진심을 다해 임할 예정입니다.

 

Q. 이야기를 듣다보면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많을 것 같습니다.

A. 종종 당황스러운 때가 있는데, 정치 성향에 관한 이야기에요. 어르신마다 성향이 다르시니까 어떤 분은 빨갱이’, 어떤 분은 수구꼴통하시며 분위기가 격앙되기도 합니다.

 

Q. 그러면 어르신들이 같은 기억을 가지고도 정치성향에 따라서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다양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A. 그렇죠. 근현대사에 대해 인터뷰를 할 때는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나곤 합니다. 가장 극명한 경우가 한국전쟁이에요. 화성시 송산면 독립운동가마을을 기록하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도 사상 면에서 이견을 드러내다보니, 해방 후 전쟁에 돌입하면서 사상을 위시한 갈등이 빚어졌죠. 고문이나 처형, 전쟁 중의 학살 과정에 대한 책임소재와 입장이 어르신들마다 달랐어요. 하지만 그것을 우리가 나서서 어떤 사상이 옳았다고, 함부로 가치 판단하여 하나의 정답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건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진심을 세상에 온전히 전하고, 다양한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죠.

 

Q. 아카이브라는 개념이 대두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아카이브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계속 확장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일원론적 사고는 허물어져가고 있고, 여러 사람의 의견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한 때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유교사상도 무너지고, 급격한 외부 사상의 도래와 기술발전과 함께 현 사회는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늘날, 우리를 지탱하던 인간성 역시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카이브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뿌리를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원동력을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민간 아카이브라는 형태도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서 하나의 주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A. 이제 코로나 시대가 막을 열면서 걱정이 많습니다. 안 그래도 취업이 힘들다고 난리였는데, 해가 지나면서 회사 들어가기가 갈수록 더욱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매번 끝이 없는 경쟁사회 속에서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취업전선이 더욱 힘들어질 거예요. 하지만 여러분이 준비한 만큼 열려있는, 미처 보지 못했던 취업의 문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취업이라는 것을 너무 정형화된 형태로 바라보아서 더 힘들지 않았나 싶어요. 저 같은 경우에도 조금 더 이름난 기업, 안정적인 기업만을 바라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이 더욱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제가 속해있는 아카이브라는 새로운 직종도 있고 이외에도 역사를 통해서 시도할 수 있는 다양한 직종들이 있을 것에요. 당장에 정확한 답을 드리진 못해서 미안한 이야기지만, 자신을 전공이나 학벌, 자격증 등에 얽매어 한계를 지나치게 설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무엇이더라도, 작은 것부터 준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가 이런 노력을 하는 여러분을 보면서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나?” 라는 이야기를 할지 몰라요. 근데 그것이 1, 2, 3년 쌓이게 되면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후배님만의 보물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Q. 오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선배님의 진심을 많이 느낀 것 같습니다. 아카이빙을 하면서 진심으로 진심을 담아내고 싶다고 하셨는데, 진심으로 2행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진행해온 여러 아카이브를 되돌아보며

심각한 마음으로 대하기도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모두 거짓이 아 닌 진심이었습니다.


[인터뷰, , 편집-국사학과 17학번 박건, 국사학과 17학번 최진주]